본문 바로가기

생선회에대하여

섬사람들이 말하는 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삐 흘러가는 일상사. 생활에 지칠 때면 도시의 샐러리맨들은 이런 상상을 한다. '낮에는 바다낚시를 하고, 밤에는 글을 쓰고, 직접 잡은 생선으로 저녁을 지으며 평화롭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실제로 그렇게 사는 남자가 있다. 그러나 도시인의 상상과는 달리 그의 하루는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문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 낚시를 하는데, 그래서 남자는 스스로를 '생계형 낚시꾼'이라 부른다.

그 남자가 그 동안 밥상에 올렸던 해산물에 대해 책을 썼다. 갈치, 고등어, 꽁치, 문어, 볼락, 삼치, 홍합…. 펄떡이는 생명력으로 물이 오른 저녁밥상. 그것은 남자의 밥이자, 생활이자, 인생이었다.

작가 한창훈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문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수권의 책을 펴낸 지금도 그는, 작가의 눈으로 바다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어부와 해녀들 사이에 섞여 몸으로 바다를 살아내는 생활인의 눈으로 바다를 대한다. 그런 그가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바다의 기억과 낚시생활 40년 노하우를 엮어 '21세기형 자산어보'를 완성했다.

잘 알려졌듯이 '자산어보'는 조선시대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펴낸 책이다. 외롭고 고된 유배지 생활을 이겨보려는 듯, 정약전은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바다 생물들을 이리저리 헤집어보며 관찰하고 연구했는데, 그때 남긴 기록이 바로 '자산어보'다. 그로부터 200년 후, 작가 한창훈은 고향 거문도로 돌아와 그만의 자산어보를 채워가기 시작한다. 비린내 풍기는 '갯것'들을 맛깔나게 먹는 법, 잡는 법, 다루는 법과 함께 바닷사람들의 애틋한 삶의 면면까지 녹여냈다.

특히 섬사람들의 회 먹는 방법이 눈에 띈다. 회로 배가 불러야 된다는 것이 섬사람들의 기본 방침이어서 회는 일단 수북이 쌓아놓고 먹는단다. 도시 횟집처럼 얇게 저며놓고 친구 부르면 욕먹기 십상이라나. 또한 섬에서는 회를 조선간장, 마늘, 설탕, 고춧가루, 생강, 깨로 만든 양념장과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치고, 그 다음이 묵은 김치나 고추냉이 간장을 곁들여 먹는 것이라고. 도시인들처럼 초고추장에 먹겠다면 구박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여기까지 읽으니 벌써 군침이 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맛보고 싶은 다양한 갯것. 작가가 직접 서툰 솜씨로 찍은 날 것의 생선 사진과 거칠고 투박한 글. 그 안에는 비릿한 바다의 냄새가 있다. 눈물처럼 짭쪼름한 소금 맛이 배어 있다. 하긴 그것이 바로 인생의 맛 아니겠나.



한창훈

1963년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에서 세상에 나왔다. 세상은 몇 이랑의 밭과 그것과 비슷한 수의 어선 그리고 넓고 푸른 바다로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에 낚시를 시작했고 아홉 살 때는 해녀였던 외할머니에게서 잠수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사십 전에는 기구할 거라는 사주팔자가 대략 들어맞는 삶을 살았다. 음악실 디제이, 트럭운전사, 커피숍 주방장, 이런저런 배의 선원, 건설현장 막노동꾼, 포장마차 사장 따위의 이력을 얻은 다음에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뒤로는 한국작가회의 관련 일을 하고 대학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수시로 거문도를 드나들었다.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바다를 배경으로 둔 변방의 삶을 소설로 써왔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장편소설 『홍합』 『열여섯의 섬』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 등을 썼으며, 어린이 책으로 『검은 섬의 전설』 『제주선비 구사일생 표류기』가 있다. 대산창작기금, 한겨레문학상, 제비꽃서민소설상, 허균문학작가상, 요산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